03 FEB 2014

벽면녹화에 관한 소고.


녹색을 걸치면 대접받는다?

친환경의 시대, 일단 녹색을 걸치면 대접을 받습니다. 이미 친환경인증이라는 제도가 생겼고, 녹색성장이라는 국가적 아젠다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그린green이 키워드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설계보고서를 보면 가히 초록색 신조어들의 경연장이지요. 그린빌딩, 에코플라자, 그린랜드마크등. 멋진 말입니다. 그런데 기분은 썩 유쾌하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연과 개발이라는 서로 어울리기 껄끄러운, 정반대의 지향점을 갖는 개념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무언가의 필요에 의해 급하게 비벼져 있는 듯한 혐의를 거두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제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버티컬 가든 Vertical Garden 역시 마찬가지 상황인 듯 합니다. 수직의 정원? 언어는 사고의 옷이라고 하는데,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드러내는 말인지, 아니면 역으로 치열한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내는 캐치프레이즈들의 성찬에 우리 디자이너들이 어설프게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버티칼 가든 Vertical Garden = 그린 오브젝트 Green Object?

몇 년 전의 일입니다. 한국 석유 공사 사옥 건립을 위한 현상설계에서 버티컬 가든을 위한 아이디어 제시를 의뢰 받습니다. 지상 21층 건물에서 3개 층씩을 슬라브를 보이드로 오픈하여, 전부 7개의 아뜨리움 가든을 수직적으로 연속되게 배치한 건축단면을 보면 꽤 푸짐한 공간으로 조경에게 이만한 실내공간을 내 주다니... ? 그런데 여기에 심을 식재를 고민해달라고 하더군요. 이 아뜨리움들 안에 플랜터를 설치하고 나무를 식재해서 정원을 만들고, 그것을 수직적으로 나란히 배치를 하면, 버티컬 가든이라고 부를 수’는’ 뭐... 있겠지요. 그런데 속이 좀 편치가 않더군요.

인터넷을 검색해봅니다. 버티컬 가든이라는 검색어의 첫 페이지를 차지하는 이미지들. 쌓아 올린 초록색의 메스들, 수직으로 세워진 초록색의 면, 초록색의 건물 파사드들로 요약됩니다. 언젠가부터 녹색이 이렇게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 참으로 대단들!)그런데 이것들이 내용상으로는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수직적인 초록색의 무언가를, 녹색의 오브젝트를 세우는 것!

이 대단하고 의욕적이며 탁월한 대가들의 작품들은 마치 이렇게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자연도 세울 수 있고, 오브젝트가 될 수 있고,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다.’ 라고… 그런데 잠깐, 자연이 오브젝트가 될 수 있는지요?

이 같은 발상에는 지극히 제한된 자연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연을 단순한 관조나 감상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자연은 살아있습니다. 당신이나 나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대상이나 물건object이 아닙니다. 살아있으므로, 자연은 이야기입니다. 여름밤 하늘을 찢어놓는 번개의 움직임부터 새들의 속삭임, 물의 흐름과 바람의 변화,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연의 숨결’이 아니던가요? 맨발로 흙 바닥을 밟을 때의 독특한 감촉,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살아있는 우리가 살아있는 자연과 만날 때의 감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경가로서 우리의 할 일을 들자면 그것은 무언가의 오브젝트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으로 ‘채우는’ 작업일 것입니다. 인공의 구조물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함께 서로 살아있음을 축복하는 장소,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정원입니다. 이 살아있음을 한국 석유공사 사옥의 아뜨리움들에서 ‘수직적’으로 채워보기로 합니다.

조경이 그리는 Vertical Garden

총 6개의 아뜨리움 안에 나무는 심지 않습니다. 구조물 위에 옹색하게 설치된 플렌터와 그 안에 담긴 나무는 결국 어정쩡한 인조 정원을 만들 뿐. 대신 자연의 살아있는 작동성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건축의 슬라브를 부드럽게 구부려서 깔때기처럼 만들고 그리고 그것을 다시 아래의 아뜨리움 내부로 집어넣습니다. 이렇게 연속된 깔때기를 통해서 건물 최상부 옥상면의 외기는 실내로 깊숙히 관입할 수 있게 되지요.

비가 오면, 최상부의 옥상정원에서 시작한 깔때기로부터 빗물이 채워지기 시작하고, 그것이 일정 높이를 넘게 되면 오버플로우overflow관을 통해 흘러내려가 아래층의 깔때기로 이동합니다. 아래층의 깔때기에서 물이 채워지면, 마찬가지 방법으로 다시 그 아래층의 깔때기로 물이 흘러 내려가지요. 이렇게 내부와 외부의 면을 동시에 갖는, 연속된 수로waterway로 기능하는 깔때기들을 통해서 빗물은 건물의 가장 아래바닥까지 흘러 들어가며 마지막으로는 수공간을 이루어 로비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각 깔때기들의 종단부에는 빗물의 낙하수량을 조절하는 Drip Controller와 함께 담쟁이 덩굴이 자랄 수 있도록 화분을 설치하여 구조물의 외피를 초록색으로 덮이게 하되 일조량이 부족할 것이므로, LED조명을 심어 그를 통해 식물이 자라날 수 있도록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들은 천정 면을 초록으로 뒤덮는 거대한 녹綠의 샹델리에로 변하게 되겠지요. 이중구조로 된 깔때기의 내부는 자갈, 쇄석, 모래등으로 채워서 빗물이 지면으로 가는 여정동안 정화되어 갈 수 있도록 합니다.

옥상을 통해서 빗물이 들어옵니다. 빗물의 흐르는 소리, 빗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떨어지는 빗물이 바닥의 자갈과 모래를 촉촉하게 적시며 올라오는 광경, 그 수면이 높아져서 물이 고이는 수공간이 되고, 그것이 다시 건물 속으로, 땅으로 점점 흘러 내려가면서 정화되는 물의 여정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라나는 숲, 살아있는 인간과 살아있는 자연이 건물 안에서 만나는, 작동하는 버티컬 가든입니다.


하이브리드의 시대, 살아있는 재료로서의 조경

직종간 하이브리드의 시대에, 조경은 건축이나 도시분야와 다양한 경계선 상에서 새로운 교집합의 형태로 만나게 될 듯합니다. 이 때, 우리가 조경만의 것으로 삼고 내보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대답을 찾기 위해 아무리 다시 보고 다시 보아도, 녹색으로 덧칠한 오브젝트에 조경은 없습니다. 조경은 살아있는 재료를 가지고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이야기를 담는 숭고한 직업입니다. 우리의 고유한 재료, 자연이라는 재료의 살아있음을 축복하고 환영합시다.

- 몇 년 전 작업하여 현상설계 당선한 작품의 설계소묘로 환경과 조경에 기고한 글이기도 합니다. 조경과 건축의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던 시기의 고민이 읽혀지네요. 문득 블로그에 올려보고 싶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을 디자인 합니다. 주)라이브스케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