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의 몸체는 러버콘이라는 공사현장에서 매일 보는 메터리얼로 만들기로 한다. 가만 보면 이것은 현장이 시작되면 가장 처음 들어오는 건설 현장의 필수 아이템이면서 또 공사장을 내내 지키다가 제일 마지막에 철수되는 이를테면 현장의 파수꾼 같은 존재이다. 문득문득 러버콘을 볼 때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환경을 지배하고자 하는 어떤 욕구가 있다면 마치 이것이 그러한 개발하고자 하는 욕망의 아이콘이 아닐까? 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실상 이 러버콘 ― 트래픽콘이라고도 하는 ― 을 가지고 만든 작업의 1탄은 2012년 서울시에서 주최한 takeurban72의 이벤트에서 시작됐다. 당시 굉장히 적은 예산과 3일 만에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한계 안에서 일찍 끝내놓고 쉬자는 작전을 극단에 밀어붙인 결과 찾게 된 시스템이다. 러버콘을 뒤집어서 그것들끼리 케이블타이로 연결하여 큰 지형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한 발 더 나아가 러버콘이라는 지극히 인조적이고 대량생산된 재료가 정반대로 지극히 러프한 재료인 자연을, 다시 말해 그동안 서로서로 배격하고 멀리하고 지배하고 지배당하던 것, 파괴하고 파괴당하던 것이 다시 함께 한자리에서 비벼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수백 개의 러버콘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의 동산을 만든다. 뒤집혀져 땅에 박힌 채로 하늘을 향해 대포와도 같은 수많은 입을 열고 있는 인조적인 지형, 자 이제 중요한 건 이런 형태 안에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가 관건이 되겠다. 이미 콘이 거꾸로 설치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이 안에 무언가를 담겠다는, 혹은 말하겠다는, 그 자체로 이미 강력한 기호작용을 하고 있으므로 그러하다. 작가가 의도하든 않든 간에 형태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이 기호, 그렇다면 나는 그 기호에 부응하여 무언가를 더해야만 하는 새로운 의무가 생기는 법! 지시하는 것과 지시되는 것의 거리가 짧을수록 울림은 큰 법이겠지. 군더더기 없는 전달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로 압축이 되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언덕이라는 테마를 이용하여 그대로의 자연을 담는다. 두 번째는 땅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울림통이라는 이야기를 이용하여 소리를 담아본다.
애초부터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던, 환경을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인 이 아이들이 이제는 거꾸로 뒤집어져서 흙을 담는, 자연이 새로 자라나게 하는 플랫폼이 되도록 한다. 인공과 자연, 개발과 보존이 마치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오랫동안 서로 반대 방향만을 쳐다보며 옥신각신해왔지만, 이제 한 자리에 함께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충돌의 이미지를 연상하며 필요한 식재계획을 해간다.
디자인을 만들어 놓고 보니 거대한 울림통, 혹은 우퍼 같은 것이 땅에 그대로 심어진 듯하다. 혹시 가능하다면, 이것이 아마도 정원이자 동시에 거대한 크기의 악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2013년 ‘이것도 악기일까요?’라는 EBS 다큐프라임의 제작팀과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장기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들과 함께 디지털-아날로그를 오가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재미있게 참여하며 적지 않은 공부를 하게 된다. 사실 조경가는, 일하다 보면 때로는 단순히 ‘미디어 월’이라고 설계도서에 집어넣기는 하지만 정작 그것들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전혀 모르지 않나?
참으로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이다. 악기에도 일가견이 없는 조경가가 이제는 어떤 악기로 소리를 낼까 고민하며 낙원상가를 마치 길거리 캐스팅에 나선 제작자의 심정으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훑으며 돌아다닌다. 앗. 이거 뭐예요? 이것도 악기인가요? 아 이거요, 이렇게 흔들면 웅웅 소리가 나요. 검색해보니 스프링드럼이라고 하는, 그야말로 이것도 악기이다. 원통의 한쪽은 열려 있고, 다른 한쪽은 막혀있는데, 얇은 플라스틱판으로 막혀있는 이 한쪽 면은 그 판의 한가운데에 꽤 기다란 강철스프링이 매달려 있다. 원통을 흔들면, 매달린 강철 스프링이 아래에서 흔들리게 되는데, 그 길이가 충분히 길기 때문에 원통을 작게 움직이더라도 그 아래의 스프링은 오랫동안 진동을 지속하게 되고, 그 진동이 고스란히 플라스틱판을 흔들리게 하여 소리를 만드는 원리이다. 우우우우웅…하는 마치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같은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