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OCT 2014

라펜트 인터뷰(1)-협업의 기술


인터뷰를 하기 전 인터뷰이의 답변을 예상하며, 질문을 준비하곤 한다. 유승종 대표(livescape)와 권병준 작가(미디어아티스트)를 만나는 순간까지 ‘오늘은 이렇게’란 일련의 대화흐름을 리마인드 했다. 인터뷰 컨셉은 협업이었다.

‘조경과 미디어가 만나 새로 만들어지는 무언가의 결과물’ 정도의 결어까지 생각해 봤다. 짧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면, 협업은 이슈로 빚은 결과물이 아니라, 진정성에서 만들어지는 신뢰 프로세스였다. ‘정원이 있는 국민책방’에서 만난 두 전문가는 ‘협업’ 을 그렇게 말했다.


*오는 5월 31일부터 9월 28일까지 유승종 대표와 권병준 작가 등은 캐나다 국제가든페스티벌(International Garden Festival)에 참가한다. 출품작은 ‘Cone Garden'이지만, 우리에겐 복실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첫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유승종(이하 유): 지인 소개로, 권 작가님과는 2012년 'Take Urban in 72 hour(이하 테이크어반)'에서 처음 작업을 했어요. 테이크어반은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72시간 안에 의자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당시 함께 만들어지는 에너지가 좋았죠.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결과물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보다, 작업을 통해 많은 사람을 알게된 고리가 된 작업으로 특별한 경험이 됐습니다.


권병준 작가님이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소개를 부탁드릴께요.


 

권병준(이하 권): 저는 음악 하는 사람입니다. 뉴미디어 일을 하는데, 특히 다른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들을 하는 편입니다(그는 과거 삐삐롱스타킹의 고구마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저는 최소한의 미디어, 자연에 가까운 소리에 관심이 많아요. 기술을 사용하는 일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왔습니다.

유승종 대표님은 우준승 건축가가 무조건 해보라고 추천을 하는 거예요. 겪어보니 열정도 남다르고, 무엇보다 끌고 가시는 힘이 있으셨습니다. 자신의 일에 즐거워 할 줄 아닌 에너지 넘치는 좋은 분입니다.

테이크어반 이후엔 작년에 악기를 만드는 EBS 다큐멘터리(이것도 악기일까요?)를 찍었습니다. 음악적인 조경, 음악적인 건축을 화두로 이야기를 해보자며 힘을 모았죠. 그래서 특히 작년에 자주 보고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제가 하고있는 일렉트릭 사운드는 재미있고, 신비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자파는 싫어요. 모순이지요.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라는 풍력발전도 터빈으로 새들을 생명을 위협합니다. 태양열 집전판도 사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도 모순이지요. 극강의 기술이란 결국 자연스러운 그 무엇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사람을 향하는 그런 단계 말이죠.

자연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화두로 소리를 만들어왔죠. 아직 찾고 있는 중 이지만...  


광화문 복실이 프로젝트에서 두 분은 각각 어떠한 부분을 맡으신 건가요? 


: 제가 아는 미디어적 요소를 통해서 ‘어떻게 프로젝트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까’ 에 대해 같이 고민한 정도로 생각되는데요.


: 사실 권 작가님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우리가 미디어를 바라보는 관점과 하는 사람이 보는 관점이 같지 않았기 때문이죠. 가령 우리가 새롭다고 하는 시도들이 권 작가님에게는 피곤한, 혹은 피로한...


: 아니요. 피로하다 보단, 왜 필요한 지에 대해 서로 고민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자연과 결합한 기술이란 무엇일까? 그 기술이 과연 필요할까? 그렇게 들어간다면 어떻게 구현할까? 이런 고민에 대해 서로의 입장과 관점을 말했던 시간이 많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원에 미디어를 결합(복실이)하는 작업도 새롭지만, 악기를 만드는 프로젝트(이것도 악기일까요?)에 조경가를 참여시킨다는 구상은 더욱 새로웠는데요.


: 권병준 작가님이 주축이 되어 애를 많이 쓰셨죠. ‘음악가, 건축가, 조각가, 미술가, 조경가’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악기를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큰 취지였어요. 여러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전문지식의 아우라에서 악기를 바라보며 작업을 했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죠.


: 저는 사운드스케이프에 관심을 가져왔어요. 결국 소리풍경이란 말인데, 그게 랜드스케이프(Landscape)와 닿아있잖아요. 보는 풍경과 듣는 풍경,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유승종 대표님밖에 없었어요. 다른 작가들은 소리의 전체적인 풍경보다는 개별 오브젝트에 주력했기 때문이죠. 유 대표님은 대지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닿아있는 것들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개인적 관심사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음악도 넓게 보면 사운드스케이프와 한 방향으로 흐르거든요. 지금 이 곳에 흐르는 음악만이 소리가 아니라, 주변에서 이뤄지는 대화까지 하나로 섞임으로써 우리 주위를 감싸는 분위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 작업을 같이하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을 따라가면서 보았습니다. 굉장히 값진 공부였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대부분이 미디어를 다루는 것을 편히 생각하였고, 그런 것을 가지고 어떻게 결과물을 만드는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권 작가님의 아이디어는 조경가로서도 ‘내가 정말 안했구나. 이게 근본이고, 기본인데’라는 생각을 들게해요. 우리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들이 닿아 있던가요?


: 처음 광화문 복실이를 할 때, 미리 그림을 그려놓았어요. 미디어는 그저 ‘스피커를 넣고, 소리를 넣자’처럼 쓴다는 식으로 생각했었죠. 남들보다 하나를 더한다는 느낌만 붙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권 작가님을 만났고, 처음 하신 말씀이 ‘로우테크(low-tech)'였어요. 최신의 하이테크가 좋다고 생각해왔는데, 그 반대편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씀하신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죠. 


광화문 복실이를 캐나다로 가져가기 위해 나누었던 대화에서도 권병준 작가님은 저보다 더 자연에 가까운, 자연과 화해하는 제스처를 취하셨어요. 자연에 어울릴 수 있는, 더하는게 아니라 덜어내는 미디어를 구상하신 것이죠. 

: 사실 저는, 정원이라는 것, 조경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조경은 경치를 만드는 일이잖아요. 저는 소리경치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소리풍경을 만들 때 ‘이 소리가 꼭 필요한가?’ 에 대해 매번 고민을 합니다. 굳이 없어도 되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죠. 빼야 될 것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제 성향이 진취적이진 못한 건 맞아요.


사람들은 정적을 힘들어 합니다. 적절한 소음이 있어야 사람이 편하거든요. 정적이 익숙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 소리가 안 들리는 상황이 됐을 때 불안하거나 우울해 지기도 합니다. 기분을 띄우기 위해 카페인이 든 커피를 자연스럽게 마시는 것처럼, 소음에 익숙해지면, 정적의 가치를 잘 모르게 됩니다.

 

저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연 그대로를 보고 들을 때 짜릿함을 느껴요. 사람의 손길이 들어가서, 자연을 더 아름답고 돋보이게 만든다면 괜찮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말도 안되게 지어놓은 건축물을 보면, 오히려 ‘짓지 말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도 가져요.


그래서 자연 속에서 작품을 다룰 때 ‘이게 꼭 필요한 것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봅니다.


: ‘과연 여기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전 처음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권 작가님을 만나면서 줄이고 또 줄이게 되었지만 말이죠. 그게 진짜 직관적인 거죠. 그래서 캐나다 가든페스티벌에도 편하게 작동하는 그런 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게 맞는 방향인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조경하고 미디어가 만난다? 조경과 미디어가 같이 하는구나’가 하나의 이슈가 될 순 있겠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경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미디어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 정말로 만나야 하는 거잖아요. 여기에 이것이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대화로 찾고, 덜어내는 것, 그것이 협업이 빚는 중요한 그 무엇이라고 봐요. 

 

: 성산 일출봉에 있는 안도타다오의 ‘지니어스로사이’ 건물 내 미디어 작품을 보면, 영상으로 일출봉이 나옵니다. 그런 것이 억지스러운 것 같아요. 미디어를 더하는 작업이었는데, '이걸 왜 했나'싶고, 답답했지요. 제가 보기엔, 그 공간을 비워두는게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 잘하는 사람일 수록 뺀다는 말이 있잖아요. 스스로도 점점 빼는 것이 잘하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딱 봤을 때, 이해가 되는 것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대단한 내용이 있고, 작동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것들이 장소에 감동을 주기 위한 장치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디자인을 할 때, 장소성과 컨텍스트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뭔가 넣으면서 담고 싶어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담는 것이 아니라 빼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할 필요가 있어요.

 

: 미디어가 자연에 개입했을 때 서로가 살아나는 작업을 볼 수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주로 ‘사람이 더 있게 하고 싶은 공간, 재미보다는 신비로움 같은 것들을 더해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 복실이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요?


: 광화문과 달리 캐나다는 인위적인 연출을 하기 힘들어요. 대상지가 숲 속에 있기 때문이죠. 숲 속에는 새소리, 바람소리가 납니다. 과연 그 속에 어떠한 미디어적 요소를 넣어야 우리가 납득할 장치가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희는 자연의 법칙을 이용한 무언가를 만들었어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무언가가 되었으면 했죠. 자연에 미디어를 넣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캐나다의 자연과 더불어 그 곳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했어요. 바꿔서 외국 작가가 우리 농촌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무엇을 했다면, 어떠한 느낌이 들까를 그려보면 됩니다. 그래서 관람하는 사람들의 정서도 우리에겐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어쩔 땐 한국적 스타일의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해외에 정원을 지어주고 오는 거잖아요. 관람객은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일테고.

 

: 캐나다 복실이의 전체 디자인은 절반이 마운딩, 나머지 평면은 구획화된 좌표처럼 떨어지게 됩니다. 디자인시 좌표가 스위치나 조작의 기능이 될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습니다. 식재도 야생적이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던... 야취적인 경관와 어울리는 식재 연출을 준비하고 있어요. 콘과 콘 사이 틈바구니에 벌어지는 공간은 나중에 식물이 들어가는 자리가 되어 풍성한 볼거리가 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