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JAN 2015

살아있는 것을 디자인합니다


2009년 건축평론지 와이드의 전진삼 선배님의 초청으로 땅집사향이라는 세미나의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희림건축에서의 수 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호시탐탐(?) 어떻게든 재료의 살아있음이 디자인에 극적으로 반영되길 바랬었고 그런 사례들을 모아서 소개한 자리였죠. 살아있는 것을 디자인한다는 라이브스케이프의 주장(?)이 이때부터 시작된 셈입니다. 다음은 그 당시 와이드 지면을 통해 함께 소개된 강의 요약본입니다.


자연으로 디자인할 수 있을까?


물의 흐름과 속도, 바람의 세기, 땅의 성질, 어쩌다 한번씩 내려치는 번개까지..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것들……그런 것들로 디자인 하는 것이 가능할까?


혹시 이 질문에 멈칫한다면, 나는 이제 당신에게, 건축적 마인드에서 출발된 비좁은 프레임을 벗어 던지고 조경디자인의 광활한 영토로 들어오시라고 감히 초대하고 싶다.


편의상 설명을 위해 슬라브, 보, 기둥, 스킨, 패널, 유리창, 문, 바닥, 포장 등의 공간구성 요소와 재료 등을 전부 아울러서 “죽은 재료”라고 칭한다면, 이와는 반대로 자연에서 벌어지고 있는 꺼리들, 이를테면 물의 흐름, 바람의 세기, 무리 지어 이동하는 새들, 심지어 번개까지도, 이 모든 것들은 환경을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디자이너가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도구로서 “살아있는 재료, Raw Material”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소재를 박제화한 디자인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SWA GROUP의 구글 본사 디자인)


디자인을 하는데 있어서 죽은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과 살아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이 같을 리 만무하다. 생태찌개와 동태 찜의 요리법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환경을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는 자연의 살아있음을 반영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은 재료의 레시피를 살아있는 재료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장 가까이에 있는 수공간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바닥분수, 음악분수, 안개분수, 거울연못 등……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상은 물의 조작된 움직임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음에 불과하다. 우리가 만일 물이라는 살아있는 재료의 살아있음, 역동성, 그리고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계 내에서의 속성을 이용한 디자인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참으로 멋지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자체로 디자이너로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


여름 밤에 무섭게 큰소리로 하늘을 찢어놓는 번개 역시도 디자인의 일부로 사용될 수 있음은 이미 대지 예술가 Walter De Maria가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 중서부 뉴멕시코의 사막지대, 인적이 드문 초지 한복판에 세워진 400개의 거대한 스틸막대기들은, 그 자체로서 갖는 형태적 기념성보다는 자연과의 조우를 원하는 인간의 제스처라는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즉, 사막지역에 짧게 찾아오는 우기에, 간간히 내려치는 이 근방의 번개들 중에서 상당수가 바로 이 스틸막대기를 타겟으로 삼게 함으로써 번개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며, 그리하여 사막에서의 짧은 우기를 축복하는 색다른 장소성을 만들고 있다.

(Walter De Maria의 Lightning Field.(1977) – Automated ecological machine 으로서의 기둥들)


이 과감한 예술 작품의 이면에는, 자연의 프로세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디자인의 대상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모험정신이 깃들어 있다.


조경 디자인의 영역에서 자연은 더 이상 관조나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당연히 디자인의 재료로서 자연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재료는 살아있다. 죽은 재료를 디자인하는 것과 살아있는 재료를 디자인하는 방법은 같을 수가 없다. 여기에는 조경가와 건축가의 구분은 절대로 무의미하다. 작업 중 몇 가지를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