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Jun 2021

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 6월 개재

자연의 디자인- 녹색의 공간혁명

 

더현대서울, 컨텐츠로서의 자연

 

 

미장센과 미장아빔

 

미장센(Mise-en-Scène)이란 단어가 있다.  ‘감독 특유의 미장센으로 감동을…’이라든지, ‘공간의 미장센이 독특하다’같은 표현으로 사용된다. 영어로 직역하면 ‘putting on scene’이니까, 장면scene 을 만들다 정도가 되겠다. 그러니까 위의 표현들은 그저, 잘 만든 장면이나 잘 만든 공간이란 뜻인 셈이다.

 

요즘은 미장아빔(mise en abyme)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액자식 구성’이란 의미인데,  기존의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의 프레임을 집어 넣는 방식으로,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같은, 다단식 구성이 쉬운 예가 되겠다.

 

최근의 상업공간 트렌드는 미장센을 만드는 것에서 미장아빔을 설정하는 것으로 옮겨 가고 있다. 꼼꼼하게 공간을 구성하는 솜씨적 측면보다는, 새로운 컨텍스트를 경험하게 하는 콜라쥬로서의 연출이 우선시된다. 느닷없이 개화기모더니즘을 연상케 하는 카페들에서부터 실내인데 뜬금없이 숲이 나타나는 플랜테리어의 경향까지 모두 같은 맥락안에서 설명되는 현상이다. 정성스럽게 만든 완벽한 어떤 것보다는 새로운 경험의 충돌, 너의 따분한 일상에서 탈출해서 어서 오렴, 새로운, 별다른, 특이한 이곳으로.

 

이처럼 새로운 컨텍스트를 만드는 일이 상환경 디자인에서 중요해지다 보니 물건 하나를 팔때도 나름의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경험하는 것에 집중하게 한다. 나는 이를 두고 잘 짜여진 경험들로 이루어진 셋트라고 표현하는데, 경험디자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이런식으로 길게 풀어 이야기하는 편이 조금 이해하기 쉬운 것 같다. ‘연출되는 셋트’이므로, ‘디자인’이란 단어보다는 ‘간지’라든지, ‘감도’, ‘바이브’ ‘무드’ 같은 단어들이 공간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주요 수단이 된다.

 

백화점

 

상업공간들의 여러 카테고리중에서도 백화점은 기본적으로 ‘천박한 뮤지엄’의 속성을 갖는다. 뮤지엄스러운 있어빌러티를 지향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빌미로 최대한의 소비가 촉발되는 장터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중적이다. 공간적으로 다양한 콜라쥬가 가능하고 그래야만 한다. 더군다나 요즘 시대란 게,  ‘저기 백화점이 생겼대, 오호라 백화점이? 그래 가보자’ 하고 달려가는 쉬운 시절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판국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묶는 통일된 Umbrella concept으로서의 세계관이 필요할터. 과연 더현대서울에선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사진출처: 더현대서울 인스타그램

 

여러가지 매체에서 주로 등장하는 장면으로 미루어 그것은 당연히 식물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백화점의 상층부에, 보이드의 공간들에, 복도의 한켠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풀과 나무들. 거대한 플랜테리어의 장면들. 그것들이 어떤 것이든 간에 ‘자연과 함께 이곳에서 보내는 편안한 시간’이 소구점이 되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자연이라는 컨텐츠

 

이쯤해서 예상되는 것은 살아있는 생물을 인간의 소비적 욕망을 위해 사용한다라는 비판이다. 결국 이곳의 식물들 대부분 고사하고 말것이며 생태적으로 건강할수 없다는 여러가지 염려도 수반된다. 해당분야를 깊이 알고 경험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 역시 할말이 왜 없으랴마는 지금 그런 비판은 마치 장님 코끼리다리를 만지듯 일부분에 치중하여 이면의 큰 그림, 사태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라고 단언한다.

 

마치 미장센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소위 컨텐츠로서의 공간이란 말은 습관처럼 자주 하지만 정작 그것을 촘촘하게 읽어보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기에 그러하다. 본 글은 ‘자연과 함께 보내는 편안한 시간’이란 핵심가치는 과연 백화점의 이곳 저곳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잠시 찾아가보는 과정이 되고자 한다.

 

진입의 리츄얼

 

특정공간으로의 진입시퀀스는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이 있어 왔고 이들을 따로 묶어서 소개해도 될만큼 그것은 공간 경험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백화점이라는 상업공간에서는 어떤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매장 도착시의 경험이 그동안 어떠했는가를 떠올려보자. 주차를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장층으로 올라가다보면 대부분 식품매장의 한 복판으로 들어오게 된다. 잠시의 어수선함도 수반된다. 의당 고객경험의 첫출발은 식품매장이 된다.

 

더현대서울 역시 지하에 주차를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지하의 매장층에 당도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전면에 나를 맞이하는 고객센터가 보인다.

 

마치 동이 서에서 먼것처럼, 식음공간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자리하고 있으며 이렇게 넓어진 휴게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가벼운 드링크를 판매하는 곳들이 그 주변을 두른다. 영락없는 호텔로비의 그것이다. 만들어진 방식- 소위 말하는 톤앤매너- 을 보아도 여지없이 호텔로비의 체크인이나 테마파크의 컨시어지와도 같다. 백화점이라는 이야기 구조안에 호텔이나 테마파크라는 또다른 이야기(미장아빔)를 담고 있는 셈이다.

 

통상 고객센터는 불만교환환불이 접수되는 곳으로  의례히 상품권 교환이나 백화점카드 만드는 곳과 함께 배치된다. 번호표가 있고 카운터를 마주보는 고객의자가 있다. 8층짜리 백화점 건물이라면 8층 어딘가에 배치하는 식이다. 운영적 측면에서 인기 있을까? 글쎄 그건 모르겠다. 아무튼 그동안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고객센터가 이용자를 맞이 하는 최전선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혹시라도 그 이유를 ‘우리는 고객이 그만큼 중요해요’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에서 찾는다면 사태를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컨텐츠설계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실제 전통적 고객센터는 역시나 최상부에 마련되어 있다. 다시말해 공간프로그램으로서 이곳에 만들어진 고객센터는 테마파크나 호텔로비같은, ‘백화점스럽지 않은 간지’ 를 만들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이런 구성이 증명하는 것은 다시 말해 여기는 백화점이지만 핵심가치는 ‘일상속의 쉼’이요, 고객에게 주는 경험의 메세지 역시도, 바로 이곳에서 놀아요. 쉬어요. 테마파크처럼, 호텔에서처럼, 인 것이다.

 

층간을 이동하는 방법

 

사진은 교토의 BAL 이다. 40년넘게 사랑받은 노포상업공간이 라이프스타일 백화점을 기치로 리뉴얼되었다. 아코메야, 무인양품등 특급의 앵커테넌트들을 한층씩 통으로 입점시키고 소규모의 파워브랜드들은 따로 한층에 모아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은데, 층과 층사이 에스컬레이터의 주변을 보자. 광고나 이벤트 안내 같은 배너들이 보이지가 않는다. 오히려 키테넌트의 인테리어 톤들이 그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마치 일본의 무인양품네 집에서 미국켈리포니아의 론하먼네 집으로 놀러가는 무드, 그러한 기분만 남는다.

 

지나간 세월동안 에스컬레이터 주변 벽들은 세일 행사 이벤트등을 안내하는 것(광고판)이 부동산으로서 그들의 소임이었다면  앞으로의 세월은 다를 것이다. 행사나 특가상품의 안내는 설정된 핸드폰앱의 알림으로 대체 된다.  쿠팡의 AI가 열심히 제 할일을 찾아 하는 동안 백화점은 호모콘수므스(consumers)를 위한 취향안내자로서의 길을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현대서울의 엘레베이터 충간을 가르는 솜씨는 BAL의 그것과는 같은 듯 다르다. 사이니지와 광고가 들어가 있던 귀한 자리는 역시  지워져있다. 다만 남겨진 여백은 그대로 두었다. 모든 층들은 화이트큐브안의 풍경이 된다.

 

그렇게 해서 올라온 사운드가든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 허나 위태로운 환경의 식물들은 분명 걱정된다. 문득 거친 비바람과 때로는 우박을 견뎌내며 최고등급의 방수성능일것 같아보이는 가로등을 본다. 실내에 있는 야외가로등이라니, 그리고 그 옆에 쓰여있는 문장한조각을 다시 읽는다.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어요…’ 외부에서나 봄직한 것들이 모여 함께 연출하는 장면. 실내에서 외부적 경험을 만드는 지점이다. 숲속의 쇼핑테마파크라는 경험.

 

 

한층 위로 올라간다. 전시장 앞 복도의 화분들, 작업자가 분갈이를 하다가 잠시 나간 것 같은 장면. 무심하게 노출된 화분과 자재들은 성업공간 인테리어 마감과의 조화를 평하는 기준에서는 결코 점수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들은 정반대로 물씬한 킨포크스러움으로 도시적 세련됨과의 충돌자를 자처한다.  어디서나  잘 어우러질수 있도록 ‘세련 산뜻하게’ 와는 전혀 반대의 무드의 시골포스 충만한 식물들 중에서 상당수는 오래동안 키우고 만든 것들을 어렵게 가지고 온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털털한 모양의 식물들과 함께 식물의 관리자, 자연을 만지는 작업가의 장면이 연출된 씬들은 제주 아라리오겔러리에서 디엔디파트먼트가 파도식물팀과 함께 만들어낸 장면들이기도 하다. 쇼핑공간에서 공개되는 작업과정, 유지관리를 위한 활동이 감추어지지 않고 상환경의 복판에 함께 만드는 경관은 또 다른 측면에서 꽤나 의미심장하다. 그 자체가 도시화된 자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도시정원 vs 도시화정원

 

애시당초 도시란게 사람들이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한곳에 모아 서로 함께 편리하게 살자는 지극히 합리적인 욕구에서 생겨나고 발전된 것임을 잠시 생각해보자. 자연이라고 예외이겠는가? 더우기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었던 자연을 이제는 거꾸로 안으로 안으로 모으고 있다. 자연은 더이상 멀리 어디로 나가 만나고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거실안으로 들어온 편한 친구와 같은 것이 된다. 이런 류의 ‘도시화된 살아있는 풍경’을 만드는 작전(?)들은 앞으로 더욱 각광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바이오필레아 Biophilia

 

바이오bio, 살아있음. 필레아philia 좋아함. 즉 살아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에드워드윌슨은 그의 저서 바이오필레아에서 사람이 본래 자연에서 왔고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신을 아끼고 좋아하는 것같이 본능적으로 자연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숲과 강과 바다의 사진을 찾아서 모니터 바탕화면에 설치하는 것 역시도 같은 이치이다.

 

 

화면에서 벗어나 작게라도 자연을 만들어 놓을 때도 있다. 테라리움일수도 작은 선인장화분일수도 있다.

 

 

 

화면을 벗어나고 책상위를 너머 공간의 차례이다. 이제 공간은 사람과 자연이 같이 사는 거대한 화분이라는 시스템이 되어간다. (바탕화면의 폭포사진이나 테라리움을 두고 인위적이라 하지 않듯이,  건물이 화분이 되어가는 것을 두고 자연스럽지 않은 자연이라  말할 수 없다. 이미 자연은 문명과 만나는 순간 부터 변해가는 것이 그 ‘자연스러움’ 속성이기도 하다. ) 아마존사옥이 그러하고 싱가폴Jewel 국제공항이 그러하다.  앞으로 있을 부동산개발에 이들처럼 자연화된 공간, 공간화된 자연을 만드는 것은 이미 거스를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최근 영국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모노클이 올해 최고의 리테일디자인으로 더현대서울을 선정을 했다고 한다. 설령 만에 하나 그 배후에 우회 마케팅의 노림수가 있다고 할지라도  애정을 담아 축하하는 마음이다.  물론 현시점 바이오필레아의 선례가 되는 앞서의 몇개의 대형공간들에 비해 아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식물을 주제로 한다고 하여 모두 식물원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내 상업시설에서 자연과 공간이 함께 어떤 기작으로 변모될 수 있는지를 선보였다는 점으로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