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MAR 2018

KEC빌딩 리노베이션 1

어지간해서는 세로로 긴 사진은 올리지 않는 편이다. 글을 읽는 입장에서 스크롤을 길게 내리는 것이 호흡이 바뀌고 흐름을 방해한다라는, 

나름의 작은 배려인데 이 사진 만큼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올린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위용.

눈을 아래로 향하여 거리를 보면. 폭삭 주저 앉은 듯한, 저층부의 고전적 원리같은 걸 들먹이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비례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뭐 그럴수도 있다고 치자. 정작 중요한 실제 사람들의 경험은... 우와 이게 정녕 21세기 서울이 맞는걸까

가령 이러한 부지의 모서리, 횡단보도 전면, 여기가 얼마나 소중한 부위인가 말이다. 그런 곳을 소방설비가 떠억 하니 자리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 위의 식재라. 흠 아마 법적 요구조건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었을려나

기이일다란 벽이다. 가로와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다 좋아 그래 백 번 봐줘서 가로환경을 따라 연속된 축으로 시각적 연속성을 극대화하며 통합된 가로경관을 만들었다고 하자. (말이야 막걸리야)

가운데 입구가 하나 있다. 이 곳이 정면이리라

돌벽 화단 사이 유일하게 열려있는 동선이네

앞에서 보면 아잉... 그놈의 정면성. 그래 좋아 좌청룡우백호 푸르른 소나무로 고구려의 장대한 기상을 상징한다고 하자(말이야 막걸리야2) 정부종합청사.... 서소문 분소.... 필이 팍팍

그토록 안간힘을 쓰는 정면성은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로 향하느냐. 고작 새벽집이라는 고깃집이다. 

커다란 방풍실이 그나마 넓은 실내공간을 눈치없이 반으로 가르며 자리하고 있다. 그 덕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급하게 맞닥뜨리는 머리를 검게 염색한 경비 할아버지

그렇다고 이 건물에 문이 꼭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양재천을 향해 출입문 하나

뒷편을 향해 또 하나 더. 아휴 많이 있구만

길다랗게 만들어 놓은 바깥의 화단들은 이런 상황이다. 바짝 깎아놓은 회양목들은 숨이라도 편하게 쉬고 있는 걸까. 기울어지고 있는 저... 아아아 

더 이상 눈물이 앞을 가려 말 안 할래. 여기까지가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된 이유였다. 외부가 조악함은 인정하고 계셨고, 외부공간의 개선을 위한 제안들을 받으셨고, 우리가 선정되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현장에 디자인 감리하던 중 찰칵.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갔다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께 죄송하여 잠시 숨어 있었는데 표정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튼 이제부터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오랫동안 만들어 갔던 그런 이야기

여기서 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를테면 이런 거다. 

흉물이고요 관리가 안되고요 위험하고요 보기에 안 좋고요 좁고요 이쁘지가 않고요 우리가 어떻게 해봐도 안되고요... 이런 것들은 단지 드러난 결과일 뿐이란거. 

그것이 플랜터이든 계단이든 옹벽이든 방풍실이든  외부공간이든 조경이든 건축이든 매한가지 라는 거다. 

나타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란 성경구절처럼 결국 이 일은 디자인에 앞서 플래닝이 중요하다.

디자인플래닝. 디자인을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것에 대한, 이를테면 작전이다. 모든 디자인은 이것의 성공을 전제로 한다.

442포메이션이나 학익진만 작전이 아니라 공간을 만들 때에도 무수한 작전, 전략, 알리바이들이 필요하다.  


건축을, 조경을 한다해서 시간의 축이나 삶의 경관 따위를 이야기하기엔 우리의 환경은 지극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 말이다.  

그런 것들은 이런 것들을 잘했을 때 혹은 잘하면서 얻어지는 것들이지 결코 선문답하듯 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건축이 아니고 조경이 아니고 디자인이 아니라 유사 인문학일 뿐. 

다시 한 번, 건물의 여러 문제점들은 그 개별적 증상보단 발병의 원인을 생각하고 진단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