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a Strange Smell You Actually Enjoy 


여름의 끝자락, 동시에 선선한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였는지, 의자가 편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회사 앞 정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구성원이 많지 않은 아뜰리에에서는 대표의 색이 곧 회사의 색이 되곤 합니다. 회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그중에서도 ‘대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누구보다 솔직하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스노우피크 카페앤다이닝

첫 인터뷰는 스노우피크 카페앤다이닝에서 하기로 했지요. 마침 새로운 직원분의 환영회가 있던 날이었는데, 사실 가기 전부터 인터뷰가 쉽게 성사되진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바빴죠.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웃음이 가득한 저녁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첫 시작은 새벽 6시. 사무실 앞 작은 정원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시작되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회사는 자율출근제 입니다. 저는 이날 3시에 칼퇴근 했습니다.)


인터뷰 속 햇은 저입니다. 처음 회사에 왔던 날 대표님이 제 이름을 햇님으로 불러 그때부터 별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는 회사의 대표인 스무스입니다. 본명과 달리 스무스라는 예명을 이따금 쓰지요. 그와 참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지금부터 대화 속에서는 -햇,스-로 간결하게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너무 웃긴 것 같아요. 일단 너무 형식적이지만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라이브스케이프 유승종입니다. 

지금 저희가 6시부터 이렇게 하고 있는데 요즘 어떻게 하루를 지내고 계신지 궁금해요.

언제나 그렇듯이 매일 매일 하루를 재미있게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회사 앞 공원을 바라보면, 가끔 그곳이 나만의 정원처럼 느껴집니다. 

EP1. 눈싸움 vs 눈사람

네 그러면 일단 먼저 형식적인 질문 먼저 해볼게요. 어떤 계기로 건축과 조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궁금해요. 뭔가 어린 시절에 대표님한테 진로 결정에 있어서 큰 영향을 준 계기나 사건이 있을까요?

아주 어릴 적부터 얘기를 하면 어릴때 어머니 아버지가 블럭 뭐 이런 애들이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장난감을 사다 주잖아요. 나는 그때부터 블럭이나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해요. 제 기억도 그렇구요.  책 읽는 것도 정말 좋아했는데 부모님이 전집, 위인전 사다주면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냥 다 읽었던 것 같아요.

와 그때는 위인전도 엄청 두껍지 않았어요?

그렇지, 그렇지요. 그냥…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도 그 활자 읽는 게 좋았어요. 책이라는 게 나한테는 장난감 같은 거였던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사준 내 물건이니까, 그걸 보는 게 그냥 재밌었죠. 어린애가 혼자 책 보면서 얼마나 생각을 하겠어요. 그냥 장난감처럼 한 장 한 장 넘기고, 글자를 보는 게 신기했어요. 그림이 있으면 또 그 그림 보는 게 재밌고. 그리고 부모님이 어릴 때 이런저런 장난감을 사주셨는데, 나는 로봇보다는 작은 블록 가지고 뭔가 직접 만드는 걸 훨씬 좋아했어요. 형이랑 거의 연년생인데, 성향이 신기할 정도로 완전히 달랐데요. 저는 방에서 혼자 뭘 만들며 노는 걸 좋아했고, 형은 밖에서 하루 종일 활동적이고 운동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내가 만든 걸 자랑하면서 “아빠, 엄마 이거 봐요!” 하면서 보여주어 살펴보면  되게 잘 만들더래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뭔가를 창의적이고 새롭게 만드는 걸 즐겼던 것 같아요. 저는 나가서 뛰어놀고 애들하고 공놀이 하고 이런 거를 좋아했던 사람은 진짜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눈이 오면 눈싸움 말고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하는 아이였는데, 늘 형이 같이 눈싸움하자고 끌고 가서... 눈사람을 제대로 만들어본 적이 없어요. 눈 오는 날 눈 굴려서 몸 만들고 단추로 눈 붙이고 당근 코에, 목도리 둘러주는 거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말이죠.

아니 아니 확실히 뭔가 옛날부터 끼가 있으셨네요. 우리 쪽의 끼랄까요?

그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면, 음 우리 쪽의 끼라고 나도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 부모님도 승종이 너는 참 진로 잘 결정했다고 하시는데,  나도 그게 참 감사해요. 이 일을 하는 거에 있어서는 진짜 햇님한테도 내가 늘 얘기하는 거지만, 나라는 사람의 자질과 일의 싱크가 맞으면 맞을수록 좋다고 생각을 해요. 사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그냥 계속 지금 하는 거는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나라는 사람이 일치하는 것,  일치할 수 있도록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떻게든 쳐내가거나 비켜가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게 안되지만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가능해지죠. 나는 그게 인생에서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  참 좋아요.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일과 내가 일치한다라.. 늘 갈망하면서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요.

맞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그걸 바로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일단 사회생활이라는 게 있어야 하고, 내가 해야 하는 책임도 있으니까요. 나도 당연히 힘든 시절이 있었고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도 그게 다 똑같이 적용되겠죠. 나도 처음 회사 다닐때 정말 힘들었죠. 심지어는 울면서 회사 나가고 그랬으니까요. 그때 생각하면 진짜..

와, 대표님의 그때 그 시절이네요.


스무스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 요즘 다시 캠핑용품을 하나씩 들이는 중입니다.

EP2. 세계 5위 게이머

정말 싫었지만 그 시간은 어찌 됐든 버텼던 것 같아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한 회사에서 3년에서 5년 정도는 일단 버텨야 하는 것 같아요. 그 정도가 되면 그 급에 맞는 일종의 졸업장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3년 쯤 되면, 회사도 ‘아 얘는 이런 걸 잘하는구나’,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알아요. 그때부터 조금씩 기대치가 달라지죠. 요즘은 그 텀이 훨씬 짧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진짜 길었어요. 그 시기를 나름 ‘수련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정말 말 그대로 인내의 시간이네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그 조직에 잘 맞아서,  금방 인정받는 경우도 있고. 근데 나는 그 회사라는 조직하고는 별로 안 맞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데까지, 한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도 되게 잘 버티셨네요.

아니, 그러니까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그냥 회사에서 뽑힌 신입이니까 “뭐 한 번 해봐라” 이런 것들이 많아요. 나는 내 성향상 아뜰리에 건축사무소에 갔으면 참 좋았을 것 같은데, 대형 회사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까 정말 하루 종일 캐드만 잡고 있었죠. 그때 내가 농담처럼 “캐드질이야 이건... 계집질, 서방질, 도둑질 같은 캐드질이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스스로의 일에 부정적이었죠.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 솔직히 말하면 상상하던 건축가의 삶과는 달랐어서 좋았던 기억은 없어요. 물론 학교 다니면서 알바도 많이 했고, 캐드도 빨랐어요 내가. 그 시절엔 캐드가 막 도입되던 때라, “얘는 빠르니까 기계적인 일은 다 시켜도 되겠다” 약간 그런 식이었죠. 그래서 더 싫었어요. 신입한테 무슨 디자인을 시키겠어요? 내가 디자인을 특별히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때 당시에 회사엔 진짜 대단한 선배들이 많았어요. 나는 그냥 발끝에 붙은 발톱처럼, 조용히 열심히 버티는 그런 신입이었죠ㅋㅋㅋ그 시절엔 정말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꽤 오랜 기간동안 회사에서 버티면서 정말 하기 싫으셨을 때는 없으셨어요? 일 말고 다른거에 빠졌다거나 그런 거요.

아 당연히 있죠. 이야기가 좀 근데...그 무렵에 아셈 무역센터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미국 회사 SOM이 기본계획을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다니던 회사를 포함해 네 곳이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실시설계를 했어요. 그 시절엔 프로젝트가 워낙 크고 설계기간은 짧았어서,  패스트트랙이라고, 정말 말 그대로 시간과의 싸움이었거든요. 발주처에서 아예 “다 모여서 한 사무실에서 같이 일해라” 해서, 지금으로 치면 턴키 프로젝트처럼 합사 사무실을 만들어버린 거죠. 그게 어디였냐면, 무역센터 건물 옥상 위. 가설 건물을 지어놓고, 거기서 몇 년을 일했어요. 나는 근데 거기를 자원해서 갔어요. 이유는 그냥 현장이랑 가까이 있고 싶었어요. 그때는 그런 생각이었죠. 터파기부터 바로 옆에서 보고 싶고, 진짜 ‘건물이 세워지는 걸 눈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 사실 위에선 정말 웃겼겠죠. 신입이 이런 소리를 하니.. 그때 우리 본부장님이 내 말을 듣고 “아유 일할 놈도 없는데....그래 가라 가!” 하시더라고. 그래서 진짜 그렇게 가게 됐어요. 그렇게 삼성동 현장에서만 한 3년 정도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일도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그때 몰입을 했던 일이 게임이었어요. 스타크래프트가 나오기 전이었는데..

그 컴퓨터 게임에 몰입을 하셨다는 거죠?

그렇지 그렇지. 그때는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어요. 막 인터넷 망이 깔리기 시작하던 시절이어서 플로피 디스크로 작업하던 때예요. 참 옛날이다 아아아. 그런데 우리가 워낙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으니까, 서버나 네트워크 같은 게 전국에서 가장 먼저 도입된 현장 중 하나였죠. 그 시절에 ‘모터 레이스 2’ 라는 PC 게임이 있었는데, 요즘처럼 온라인으로 전 세계 유저랑 연결돼서 하는 네트워크 게임이에요. 1990년대 초중반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제가 또 승부욕이 좀 있잖아요. 그 단순한 레이싱 게임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몰라요. 그때 홈페이지 서버에 접속하면, 세계 랭킹 5위까지가 메인 화면에 뜨는데 “저기엔 꼭 내 이름이 올라가야겠다” 싶었어요. 결국 진짜로 5위 안에는 항상 있었어요. 그게 레이싱 게임이니까 거의 0.01초 차이로 들어오는 거예요. 1등부터 5등까지는 거의 동시에 들어와요. 정말 말 그대로 손끝 싸움이었죠.

그렇죠 그렇죠.

그거를 점심시간이랑 쉬는 시간만 되면 그걸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우리 동료들이나 선배들이 야, 얘는 모터레이스 귀신이다 그러고. 게임 대회 같은 거 하면 내가 회사 대표로 나가서 다 깨고 막 이랬어요. 그때 정말 키스킨이 다 찢어질 정도로 열심히 하고 옆에서 선배들이 응원하고 그랬었죠.

ㅋㅋㅋㅋ대표님 정말 집념이 대단하셨네요.

그래서 내가 이제 3년 정도 지나 이제 복귀를 했는데, 회사에서 이제 게임 천재가 된 거죠. 그때 뭔가 이 캐릭터가 잡혔죠. 그 전에는 좀 쩌리였는데 그 대형 조직에서 하나라도 잘하는 게 생기니까 관심을 받더라고요.

그게 건죽도 아니고 게임인거네요.

그렇지. 당시에 난 술도 잘 못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이제 한 3년 지나니까 그때부터 디자인도 시키시더라고요. 또 당시에 내가 했던 몇 디자인을 우리 본부장님이 보셨을 때는 좋았나 봐요. 그 이후부터는 인정도 받고 기본 계획 단계에서 일을 조금씩 맡아서 했죠. 내가 또 그림을 이따금 쉭쉭 그리니까 좋아했던 거 같아요. 



EP3. 그림과 디자인의 시작

그쵸. 그림 얘기좀 해주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거 정말 좋아했어요. 책을 아무것도 몰라도 눈에 보이는 대로 읽었던 것처럼 그냥 아무거나 그렸어요. 근데 6살 때 쯤에 내가 생각을 한 거예요. 난 아직도 기억이 나. 6살이에요. 왜 아이들은 자동차를 이렇게 평면적으로 그릴까. 이렇게 그리고 동그라미 두 개 그린 걸 차라고 할 수 있나. (평면적인 자동차를 그리며)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이런 생각을 했어요.

6살 때 그런 생각하면 천재 아니에요? 진짜 신동인데

그래 가지고 내가 실제로 차를 관찰을 하고 입체를 그린 거죠. 아 그러니까 요즘 말로 아이소메트릭으로 그린 거죠.

우와

진짜 웃기다. 이렇게 이렇게 그린 거지.(그림을 그리며) 이거 이제 찍으세요. 물론 이렇게 되게 원칙적으로는 안 그렸겠지만 나름 이렇게 시도를 했어요.

6살이 이렇게 그렸다니..아무리 기억이 미화됐다고 해도 충격적이다.


대박 부모님이 보고 기겁하셨겠는데요.

심지어 내가 어느 정도로 그림을 그렸냐 하면 이제 학교에서 학생 대표로 그림 그리기 대회 같은 거 나가면 가작, 특선 정도만 늘 받아 오는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내가 그림을 잘 그렸는데 왜 상을 못 타지 하고 너무 이상해서 선생님한테 갔더니 '어른이 그려주면 안 돼요.'이랬데요.  

와 얼마나 잘 그리신 거예요. 저도 보고 싶네요.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셨으면 사실 순수 미술 쪽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근데 왜 디자인이고 그리고 건축을 선택하신 거예요?

저도 실제로 그러려고 했어요. 진짜로 미대 가려고 미대 입시반을 다녔죠. 근데 그것도 그거 대로 힘들더라고요. 약간 수학의 정석 풀듯 공식에 맞춰서 그리니까... 아무튼 모든 상위로 올라가는 데는 똑같은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근데 그 기능적인 노력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나는 또 싫증을 나름 빨리 내는 편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엄마한테 대학 안 갈래요. 막 이딴 소리를 한 거죠.

어머

그때 어머니가 나한테 얘 승종아, 건축학과라는 게 있다. 너 소질도 잘 살릴 수 있으니까 한번 가보면 어떻겠냐 하신 거예요.

와 근데 어머니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당시에는 사실 경영학과 같이 취직 잘되는 과를 가라 하잖아요.

어머닌 다 아셨던 거죠. 얜 그쪽이 아니란걸...ㅋ 아무튼 그래서 엄마가 국민대 건축학과에 나를 데리고 간 거예요. 그러면서 복도 지나가던 건축과 대학생을 잡고 내 아들이 고3이고 어쩌고저쩌고 말하시니까 그분이 이제 막 나 붙잡고 얘기해주고 그랬어요.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 대학에 꼭 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학교까지 데려가시다니.. 진짜 대단하시네요. 근데 그럼 조경은 언제 하셨어요? 약간 원래부터 알고 있으셨어요? 아니면 건축하다가 알게 되신 거에요?

그렇게 해서 대학을 갔고, 난 건축을 정말 정말 좋아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학교 다닐 때 진짜 잘했던 사람은 아니었어요. 물론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학번엔 쟤야' 뭐 이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누구보다 이 일을 좋아했던 애 중의 하나였어요. 그러다가 회사에 갔고...힘들었죠. 어쩌면 내가 조경으로 유학을 갔던 것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약간 일종의 도피 같은 거였어요?

쉽게 말해서 도피라기보다는 탈출구였죠. 음 그게 그거구나. 아무튼, 그냥 이대로 계속 살면, 나를 증명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차라리 유학을 가자. 가서 나만의 뭔가를 만들면 그다음부터 내 이야기나 내가 하는 일이 좀 먹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근데 나는 뭐 조경을 디자인으로 본 적이 없죠. 그 당시에는 그냥 풀과 나무와 뭐 이런 거였죠. 그때 우리나라가 밥 먹고 있으면 진짜 저쪽에서 막 폭탄 터지고 이랬던 시절이었거든요.

그 정도 아니시잖아요.

한참 밥 먹고 있으면 폭탄 뻥 터져서 재가 이렇게 날아가지고 밥 위에 쏟아지고 막 이랬어요.

그거 대표님 아버님 세대 이야기 아니에요? 

이런 양념거리가 있어야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거예요.

에..?

아 이제 집중력이 떨어졌어. 다음편에서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네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