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디자이너, 업의 경계에서 바라보기

조경이라는 우리의 업.

 

명함을 교환한다. 그가 말한다. 로고가 예쁘네요. 내가 답한다. 헬베티카로 만들었어요. 조경하시는 분이 헬베티카를 아세요? 그의 말이다.

그는 브랜드디자인 전문가였고, 헬베티카는 유명폰트 이름이다.

오죽하면 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너 일루와 봐. 형이 조경한다고 헬베티카, 왜, 알면 안돼? 속마음과는 달리 그저 웃어넘긴다.

타 분야의 시선이 고작해야 이런 정도라는 데에는 익숙해져 가고 있던 터이다.

이를테면, ‘우와 이런데서 조경하는 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에요’하는, 저쪽의 익숙한 반응에 살금살금 올라오는 짜증은 이제는 오히려 이쪽, 우리 내부로 시선을 향한다.

이쪽을 향해서 편치 않은 맘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쪽에선 오랫동안 주문처럼 해오는 말이 있다.

‘조경은 종합예술’, 어머 언니, 조경은 종합예술이래 글쎄. 그럼 우리가 예술가겠네? 친한 아티스트들은 누구? 어디서 전시해? 요즘은 무슨 작품?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일을 부풀려 종합예술이라 자칭하는 이면에는 이도 저도 아닌 부동산 시행사업의 행동대장격인 건설, 그 중에서도 설계.

그 중에서도 조경이라는 말단의 용역. 그 애처로운 현실의 애달픔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런지, 말도 애매한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위안 삼아 현실을 잊고 싶지 않기에 스스로 아주 자주 자조하며 묻는 질문이다.

 

업역과 코어벨류의 차이, 그리고 사용자 경험

 

참으로 그렇다. 우리의 현실이란 것이 우리의 이상과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이 다름은 우리가 속한 전문가그룹 내 집단의식의 강도에 비해 비례한다.

인식을 전환하고자 무리를 이루어 대응함은 일견 해봄직한 해결책일 수 있으나, 그것이 지나칠 때에는 오히려 도피처에 다름 아니다.

아니, 애시당초 담장 안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으로 해결이 되는 문제일까?

‘모든 직업들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들어간 지금, 소위 말하는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팀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 2012년 언저리에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삶도, 삶의 방식도 변하기에 직업도 직군도 유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본인의 업을 새롭게 정의한 마츠다 무네야키 사장의 츠타야서점은 아마 효과적인 사례가 될 듯하다.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T-site는 원서, 인문학, 수험서, 취미 등의 분류가 없는 서점이다.

물론 비즈니스 업역은 여전히 그들의 전문 분야인 dvd 음반 서적판매이다. 그들이 이것을 소재로 하여 스스로 셋팅한 코어벨류는 문화공간기획이다.

사용자 경험은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들이 재배치한 서점은 가령 이런식이다.

이를테면 우울할 때 섹션으로 들어가서 그동안 가고 싶었던 여행지에 대한 소개를 읽고 몸에 좋은 낫또요리법과 샘플을 들고

건강식의 섹션에서 시간을 보내다 기분이 전환되는 음악섹션에서 청음을 하다 나오는 사용자경험.

그들은 여전히 음반과 책을 팔고 사용자들은 인생의 시간을 기꺼이 그들과 함께 보낸다(십년이 지나 2017년 삼성동 별마당서점에서 화려하게 그 형식만 모사되고 있지만).

그렇다. 업역의 싸움이 아니라 코어벨류와 사용자 경험의 시대이다.

정원이 조경의 영역이 되어야지 말야! 이게 원래 우리 것이었거든? 하던, 움켜진 주먹을 풀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나의 업을 놓고도 보는 시선은, 이해는 무수히 다르다. 손을 맞잡고 함께 하되 잘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차피 새롭게 나오게 마련일거거든.

 

디자이너 기획의 시대

 

앞으로 세상은 점점 빨라질 것이다. 디자인? 열심히 해서 완성할 때가 되면 상황과 세상은 또 저 멀리 가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형설계는 이미 그러한 과정 안에 있다. 계획보다는 기획(플래닝)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설계가가 설계만 하면 됐지 뭐! 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초스피드 결정의 시대에 초스피드로 설계 대응만 하며, 몸을 혹사하다 종국에는 AI로 교체될 수 밖에 없다.

어딜 둘러보아도 디자인이 아닌 것이 없는, 소위 디자인 과잉의 시대이며 대부분의 경우, 꽤 잘한다.

클라이언트는 스스로 핀터레스트에서 찾아온 사례들을 보여준다. 오, 세상에 나보다 더 고민하고 왔어. 최근의 유행하는 사례이미지 몇 개 가지고 고작. 이러며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을 수단으로 콘텐츠를, 브랜드를, 공간을 기획하기 시작해야 한다. 나 역시 넘쳐나는 이미지와 사례들 덕에 생각의 서랍들은 늘 빼곡하다.

그것들을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 것에 늘 신경을 쓰고 있다. 사진을 보고, 그것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의식 속에서 정리하고 배열하는 습관이다.

이를테면 어느 학교의 한 모퉁이 작은 공간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안과 밖의 사이에 드리운 패브릭 한 장으로 평범한 경치를 심상으로 만들었다.’ 라고 정의를 해둔다.

사진이라는 기초 정보를 바탕으로 공간 기획의 가능성을 위해 사용될 만한 단어들로 정의해 내면서 범주화한 생각을 한 개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 두어야 이것이 의식 속의 어느 서랍에 들어가 있게 된다. 이곳은 아무개 조향사의 조향으로 완성된 공간입니다. 하는 문구가 어느 기억의 서랍에서 담겨 있었다.

기억에 남는 공간은 유독 향기 역시도 마감재와 같이 한 몫을 한다지?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서 이 공간은 어떤 냄새일까 어떤 비즈니스일 때 이 창가의 패브릭이랑 잘 어울릴까를 고민하다 보면 톤앤매너가 함께 생각되고

이렇게 크리에이티브의 경계를 넘어 상상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조경을 들고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게 마련이다.

스스로 업력을 발전시킬 때 업역은 확장된다.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하려 할 때(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하지 못하는 시대이다.

이 문장에서 디자인을 조경으로 바꾸어도 같은 뜻이다.

 

 

‘나음’보다 ‘다름’

 

소위 거대자본이 투입되는 글로벌한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은 지 좀 되었다.

그래봐야 크기만 크고 기간만 길고 몸만 힘든 ‘용역’이기 때문이다.

나의 창의력을 인정해주고 다양성에 감사해주는 클라이언트들은 용기를 가지고 한두 발짝 걸어가면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이런 일들로부터 얻은 경험은 특별하다. 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이 말을 자주하고 다녔고 그래서 지금 내 것을 한다.

여기서 잠깐, 사업자등록증에 내 이름이 있고 내가 디자인을 하고 수주를 하고 내가 일을 하고 내가 세금계산서 발행을 한다.

그것이 내 것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내 것은 뭐지? 아니, 나는 뭐지? 스스로 꽤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아직 없다. 중요한 것은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데에 있다. 모든 나는 모든 남과 다르다.

남들과 같아지려 하는 일보다는, 거대자본에 종속되는 용역으로서의 일보다는,

나의 ‘나’다움을, 스스로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로 서게 된다면, 그렇게 모여 우리가 된다면 그냥 뭐. 해볼만한 일이 아닐까? ♣

 

조경학회지 VOL 30.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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