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는 말한다 9

시인은 언어를 기호로 사용하여 의미를 만든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디자이너는 형태를 기호로 하여 의미를 만든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다른 이의 작품을 공부할 때는 -참 이상하게도-작품, 이미 그것으로 충분한 ‘기호’의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그 너머 다른 것을 담론으로 소비하곤 한다. 

당시 사조가 어쨌다느니 흥부의 미학이 어떻다느니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이 어떻다느니. 작품 주변을 서비하는 지적 유희. 머…다 좋다. 

다 좋은데. 문제는 그런 소비의 대강이 작품의 내적 형식보다는 그것의 상황적 의미를 파악하는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작품답사들은 의례 작가의 철학이나 관점 등을 답사를 통해 ‘확인’하는데 연연하게 된다. 역시 대가야! 어떻게 그 시절에 이런 생각을! 감탄을 하기도 하겠지만 정작 본인의 디자인을 할 때 는 ‘에이 대가도 아닌데 뭐’라며 꼬리를 내리기 십상이고… 우리의 공부는 덧없고 디자인은 어렵기만 하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선유도 공원 역시도 그 대표적인 케이스


대부분 우리는, 기의(記表-시니피에, 기호의 의미작용)로서의 선유도 공원에 대하여서는 의문을 달지 않는다. 기존의 정수시설의 구조물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 위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초록의 생명이라. 아 좋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재생을 주제로. 자연회복을 테마로. 정수장이나 폐기산업재화를 주제로 한 재활용 공모전의 주제들도 매 한가지이다. 그것이 의미이기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렇기에, 디자이너라면. 의당. 그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들의 내적 작용. 혹은 형식화의 과정이 그 본업이 될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디자이너는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물론 얼추 안다고 생각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게 다 일까. 

기표 記表 로서 선유도 공원의 구성, 그 내적 형식
녹색기둥의 정원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이것. 선유도공원의 녹색기둥의 정원. 여기서 형태구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살짝 조심은 스럽다. 특히 최근의 디자인 경향에서 형태구성은 하위의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어버니즘같은 이론위주 디자인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방가르드만이 답이 아니고 오히려 그 아방가르드(전위)를 제대로 밑받침해주는 아리에가르드(후위)에 있다. 무엇이든 디자이너는 형태로 말할 수 밖에 없기에 그러하다. 그것이 최종마침표이다. 

혹자는 과거 정수시설의 기둥을 녹색으로 덧입혔으니 “녹.색.기.둥.의.정.원”이 된 것 아니냐. 이것 이상 뭐가 있냐 라고 반문할 것이다. – 나무 심으면 조경이니 다 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매양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한가지만 질문하자. 


앉음벽이 길게 기둥들사이에 위치한다. 평면을 보아도 그렇다. 위 사진과 그림에서 왜 초록기둥들은 한 줄이 통째로 비워져 있을까? 

과거 정수시설의 구조였던 기둥들을 활용하여 초록색 생명을 덧입히는 정원을 만든다고 하는 것이 개념이므로 초록의 기둥으로 최대한 채워도 마땅치 않을 판에 그 자리에 뜬금없이 앉음벽이 자리하고 있다. 기의 記意 와 기표 記表, 시니피에 signifié 와 시니피앙significant의 충돌! – 디자인에서 항상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지만, 여기서는 백견이 불여일문(百見不如一問-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물어보는 것이 낫다)이다. 질문을 계속 던지며 부딪혀 보자. 앉음벽? 왜 이것인가? 왜 이곳인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잠깐, 이미 작가의 의도는 결국 자칫 의미론으로 생각을 번지게 하니이 질문은 제외하자. 그렇다면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였을까? 효용론적 관점으로 대답을 찾자면 나올 대답은 결국 뻔하다. 이 역시 제외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혹시, 거기 그 자리에는 애초부터 기둥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 그렇다면 기존 정수장 도면을 찾아보면 될 텐데, 객관적 사실을 찾아 또 달려가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결국 역사적 관점으로 작품을 대하는 습관의 반복이 될 것이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도면만이 유일한 자료라 여기고 다른 질문을 계속하여 던져보자.


경사로는 어떠한가? 경사로가 곧게 펴지지 않고 한번 접히는 형식이 사용되었는데 만일 곧게 펴진 형식으로 디자인되었더라면, 경사로 너머에 애매한 공간,이른바 Dead Space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정원의 윤곽자체도 깔끔했을 터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경사로가 꺾이는 중간의 랜딩 부분에 이르러서는 단풍나무가 심겨져 있는데 왜일까?
발주처의 높으신 양반이 좋아하는 나무여서? 질문을 통해 요소들을 분해하자면서, 질문이 그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 답답함을 어이할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만들기
다시 문학의 동네로 넘어가보자. 소설가 이외수는 효과적인 글쓰기를 위하여 평소에 단어들에서 나타나는 속성들을 채집하는 훈련을 권고하는데, 그가 예로 드는 속성들은 정말 방대하여 ‘머리’ 하나만 하더라도 무려 두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본다.
머리의 다양한 속성을 표현하는 단어들: 대가리, 대갈통, 대갈빡, 골, 뇌, 대뇌, 소뇌, 작은골, 큰골, 대뇌피질, 꿈, 정수리, 가르마, 대머리, 잔머리, 돌대가리, 닭대가리, 사투, 관자놀이, 뒤통수, 뒤꼭지, 마빡…
이들을 가지고 필자가 재미 삼아 만들어 본 문장들이다: ‘선생님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어제 관자놀이를 새로 했다.’ ‘사장님은 닭대가리가 정말 비상하세요!’
모두 ‘머리’를 나타내는 기호들이지만 첫 문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문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단어들의 나열일 뿐이다. 닭대가리라는 단어에 좋은 뜻이 있을리 없는데도 비상하다라고 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나열에는 논리가 필요 없지만 조직하려면 질서가 필요하다. 단어들이 제각각 결구를 이루어 의미를 짓도록 하는 것, 그 질서를 만드는 최소의 단위, 그것은 다름아닌 요소의 ‘속성’이다.
몇 줄의 짧은 시로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시인이 하는 일은 이처럼 기호들간의 내적 속성들을 재료로 하여 요리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문장들의 배열, 위치, 선후관계, 그에 따른 단어들의 생김새, 심지어는 어디에서 마찰음을 사용할 것인지 파열음을 사용할 것인지 등에 관하여 까지 전부 그 대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디자인도 어느 대가가 늦은 오후에 어슬렁 사무실에 나타나서 단숨에 그린 선으로 느닷없이 짠! 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선을 이루는 각 요소들의 속성들이 서로서로 결구를 이루고 의미 있는 관계항들로 맺어지도록 하는, 일련의 질서구축의 행위를 거쳐서 비로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 우리가 요소를 분해할 때에는, 요소 그 자체가 아니라 요소의 ‘속성’, 다시 말하자면 형태의 속성을 분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형태의 속성
조경가가 배치도에서 나무 한 그루를 폼 나게 그렸다면, 그 폼은 겉모양의 멋만을 얘기하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보라. 그 나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 이상의 숨겨진 가치들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엇보다도 나무의 크기가 적절했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 자리에 그런 모습으로 위치한 것도 이유가 되었을 터이다. 물론 모양도 적합하였을 뿐 아니라 그 나무가 다른 것들과 함께 어우러진 방향이 주변의 풍광과 일치하며, 색채 역시도 주변의 분위기와 그렇게 어우러질 수도 없으며, 질감 또한 훌륭하며, 주위의 환경이나 구조물등과 함께 보아도 산뜻한 액센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일별한 것과 같이 형태의 7가지 속성은 다음과 같다.

위치/ 방향/ 크기/ 모양/ 색채/ 질감/ 시각적 관성
디자이너가 특정한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형태를 디자인하였다 함은 바로 그에 적합한 7가지 형태요소의 속성을 동시에 구체적으로 정의하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형태를 디자인한 것은 바로 그 크기와, 그것이 자리하는 위치, 그것의 모양, 그것이 향하는 방향 등을 -동시에 다른 요소들간의 전체적 맥락에 따라- 선택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디자이너의 의도를 물리적 형태로 구현하는 디자인 과정이란, 곧 이들 속성을 구체적으로 조율하는 일에 다름아닌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 모양이 선택된 것은 그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여러 속성들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형태를 모양만의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는 형태요소의 속성중 나머지 6가지를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7가지 형태의 속성 중에서도 앞의 네 가지 즉, 위치, 방향, 크기, 모양은 뒤의 색채, 질감, 시각적 관성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공사로 치자면 앞의 것들은 건물의 생김새를 크게 좌우하는 뼈대와 같은 기능을 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위치,방향,크기,모양은 우리얼굴의 윤곽을 좌우하는 원판에 해당할 것이요. 색채,질감,시각적 관성은 이를 조금 더 돋보이게 하거나 위장하기 위한 화장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부터 요소를 분해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은 요소의 ‘원판’을 규정하는 네 가지 속성 – 위치, 방향, 크기, 모양- 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선택되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각각의 요소들이 다른 요소들과 이루어가는 관계들, 그리고 공간이나 동선체계등과 같은 전체적 맥락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관계들을 동시에 탐구하도록 한다. 질문을 통해 새로운 질문이 계속 유도될 것이며, 우리는 ‘구조’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예의 ‘앉음벽’으로 부터 시작하자. 그것의 위치는? 크기는? 모양은? 방향은? 그것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그렇게’선택되었는가?  

형태는 말한다 9live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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